


/절대순수의 존재를 탈취하다- 괴물이 난장판을 만들어놓은 현재의 혼란스러운 장소로 편입시키는 과정에서 역시 뜸을 들여주는 일종의 템포를 조절하는 부분이 될수 있겠는데 현서의 저 그윽한 눈빛을 가만이 응시해보세요. 남녀노소 누구나 응시할수 있도록 배려된 것입니다. 무념무상의 깨끗한 정신세계가 솨아아 부드럽게 흐릅니다. 현서가 바라보는 시선은 이렇듯 아주 평온하고 적막하고 따뜻합니다. 시끄럽고 어지러운 소리가 없다는 것이지 맥주캔이 터져서 피시시~ 하는 가느다란 소리가 약간 떨어진 여기서 들릴정도로 고요한 순간인데 사실 이것은 현서의 맑고 깨끗한 영혼을 표현한 것입니다.
/현서를 서로 이질적인 다른 장소로부터 또 다른 장소에 편입시키는 과정도 이렇게 일종의 부드러운 양념을 끼워놓으니 훨씬 자연스러워집니다. 이렇게 몇 발자국 디디어 나서면 우리의 실제 사회현실은 어떻습니까.. 현서가 미처 대처하고 대응할 여유도 없을 정도로 이렇듯 엄청난 혼란과 갈등의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현서는 이렇듯 밖에 내다놓으면 위험스러운 순진하고 보호받아야 할 어린이 계층을 대표하고 있으면서도 또한 뒷부분에서 더욱 깊은 그 존재의 의미가 부여됩니다




/봉감독의 전매특허라고 할수있는 카메라와 평행하게 달려가는 런닝 몹신이 이 상황에서 쓰였는데 전작과 이번작품에 걸쳐서 퀵 또는 슬로우 모션을 고루 사용하고 있으며, 특히 괴물로부터 도망치는 이 상황에서의 런닝 몹신은 그중에서도 가장 개연성이 높게 사용되었다고 볼수 있습니다. 살인의 추억 같은경우 굳이 그러한 몹신을 넣어야만 할 당위성은 좀 떨어진다고 느껴지는 부분도 있을수 있으나 이 상황에서는 당연히 군중들과 섞여 달려가야만 하는것이죠. 이렇게 손목을 붙잡고 함께 도망가는 모습 무심코 보아넘길수도 있지만 사실 이런 모습이 가족적인 인간적인 끈끈한 부성애를 느낄수 있게 하는 대목이겠죠. 이 장면도 대단히 충격적인 상황으로 묘사된 것이 아니라 약간 웃기죠 웃기면서도 통상적으로 보아왔던 저급한 코미디하고는 틀려 보입니다. 잡았다 놓치고 다시 잡으니까 친딸이 아니더라? 마치 코믹 연극의 한 대목을 보는것같은 단순성의 아름다움과 힘이 섞여 있습니다. 사실 엄밀하게 따지고 들어가면 넘어져서 더듬더듬 거리다가 같은학교 다른 여중생의 손목을 잡고 달려갔다더라! 하는 설정은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수긍하기 힘들수도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처리도 전부 새로운 시도입니다. 할리우드처럼 한동작 한동작을 지독하게 사실적으로 묘사한다던가 하는, 그래서 확실하게 어느 장소에서 누가 넘어지고 다른 누군가와 섞이고 그래서 달려간다는 것을 전부 밝혀 보여주는 이런 할리우드식의 정밀 영상 묘사를 과감히 버리고, 잡아내고 있는 영상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통상의 블록버스터처럼 대단히 스펙타클하게 가져가면서도 이렇게 그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은 간결하게 엑기스만 넣어본 겁니다. 결국은 감독은 이런 대규모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도 과감한 실험을 해보는것에 더욱 흥미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죠. 두려움이 없고 물러서질 않습니다. 그런 태도는 바로 영상에서 전부 나타나고 있는 거예요.
/역시 마찬가지인데...흥분한 인물의 옆얼굴을 클로즈업해서 프레임을 꽉차게 가차없이 집어넣어버리는 이 영상의 힘을 보세요. 이 터질것 같은 긴장과 조급함 감독이 어떻게 이토록 대담성을 표출할수 있었는지...이 급박한 상황속에서 이 자세를 장시간 엄청나게 끌어주는데 이 장력이 커요. 이게 아무나 쓸수 있는 어휘는 아니라는 얘깁니다. 일반적인 연출자는 짧게 간단하게 처리하고 사실상 꼬리를 내린다는 것이죠. 왜냐 흥행에 안전해야 하니까 실험에 대한 두려움이 있으니까..
/제가 생각하기에는 이전의 옆 얼굴 장면이 너무 강렬했기 때문에 앞얼굴이 들어가지 않아도 괜찮았을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물론 한번쯤 더 들어가는 것이 확정적이고 좋습니다. 충격적인 순간을 목격하는 아버지의 표정을 재차 보여주고 있는데 감독이 주문을 했겠죠. 너무 공포스러운 표정보다는 약간 코믹스러운 멍한 표정 이 앞모습을 카메라가 정면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현재 보이고 있는 인물과 그 인물이 바라보고 있는 인물을 완전히 분리를 시켜줍니다. 다시 말하면 이 장면 전후에 보여졌거나 또는 보여질 영상은 시각적으로 바라볼수는 있으나 심리적으로 또는 물리적으로 접근이 불가능한 멀리 떨어져 격리된 어떤 그 무엇에 대한 영상임이 더욱 분명해집니다.


/이 기가막히는 아름다운 장면을 보세요 그동안 어느 영화에서 이렇게 어리고 연약한 소녀를 홀로 내버려두고 허무하게 바라보도록 했느냐는 것입니다. 풀밭에서 일어나면서 느릿느릿 꿈틀꿈틀 허리를 펴는 저 동작 놀랍도록 기이하고 낯설어요. 눈이 부시는 저 유니폼을 보세요. 시선을 강하게 빨아들이는 저 유니폼의 기가 막히는 강박... 여중생 교복이 이렇게 탈속적으로 탈사회적으로 탈통념적으로 영상물에서 쓰여진 사례가 전무하다는 말씀입니다. 이제 현서의 존재는 일개 서민의 딸아이 여중생이 아니라 전 인류가 최후까지 지키고 있었던 절대순수의 존재, 즉 현대 자본주의의 경쟁체제속에서 인간이 살아가면서 온갖 갈등과 폭력 등의 이기적이고 악한 감성으로 찌들어있는 상황에서도, 각개 영혼의 한켠에 은밀히 간직하고 있는, 그러한 보편적인 인간의 절대적인 순수성을 은유하는, 또는 표현하는 오브제로서 홀로 서있게 된 것인데 이제는 보시다시피 그 최후의 순수성마저도 대단히 불안하고 위험한 순간에 봉착하고 말았습니다. 아 저것을 보세요. 실로 기가막힙니다. 저 구부정한 자세와 이상야릇한 표정 분명히 감독이 주문을 했겠죠 뒤를 보세요. 이제 우리는 우리가 시선을 두어 바라보는 저 오브제와의 일정한 거리감을 인식하면서 그 오브제 뒤에서 또한 일정하게 떨어져 있는 음험하게 보이는 어둠의 이미지를 어렴풋이 인식합니다. 이 어둠의 이미지는 정확한 형체를 가진 괴물일 필요가 없는 것이에요. 그저 어떤 위험한 세력 돌이키기 어려울수도 있는 암세포적인 존재로서의 세력 이제 '나'라는 자아의 순수성마저 탈취해가려는, 현대사회가 발생시켜놓은 돌연변이적인 왜곡된 그 어떤 무엇입니다. 우리 인류는 현재 이렇게 소중하게 간직해야할 감성을 허겁지겁 이 사회에 맞추어 맹목적으로 달려만 가다가 놓쳐버린 것이에요. 그래서 이 오브제는 지금 현재 인간 영혼에서 약간 이탈하여, 왜곡된 그 어떤 세력과의 중간 지점에 애처롭고 불안하게 정지하여 있는 것으로 만약 인류가 이를 빼앗긴후 곧 다시 회복하지 않는다면 공멸할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절박한 위기를 이렇게 말끔하고 상징적으로 미술적으로 시각 영상화하여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까지의 대목에 이르게 되면 여러분들은 무엇이 생각나야 됩니까 뤽베송의 제5원소가 어렴풋이 떠올라야 된다는 것이죠. 이러한 절대 순수의 캐릭터는 이미 영화 제5원소의 릴루에서 일정부분 영감을 얻었다고 볼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영화 괴물이 나오기 이전에는 한국영화가 한번도 그러한 절대순수한 소녀를 내세운 적이 없었느냐 그것은 또 아니라는 것이죠. 뭡니까 그 영화가 바로 장선우의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이라는 것이지! 몇년전 그 영화 어떻게 됐습니까... 현실과 비현실의 모호한 경계를 어설프게 실험하다가 결국 폭삭 망했었다는 것이죠. 그게 잘되었으면 지금 TTL 임은경이가 그토록 초라해 보이지는 않았을 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성냥팔이 소녀 임은경을 떠올려보세요. 백치적인 외모 표정 순백색의 원피스 손에든 검은 따발총...바로 절대적으로 순수한 존재가 살인과 같은 폭력을 사용한다는 것에 대한 아이러니를 노렸던 것이 아닙니까.. 같은 맥락으로 본 영화 괴물에서도 이러한 교복 미소녀 캐릭터에 절대 순수성을 확고히 부여해주고 무언가 재미있는 이야기나 주제의식을 드러내보고 싶다는 감독의 욕심이 나타나 있는 부정할수 없는 분명하게 의도한 설정이 아니겠습니까.
/이제 현서를 프레임안에서 뽑아내는 장면이 될텐데 여기서 중요한것 되도록이면 프레임을 크게 움직이지 않는 상태에서 특정 오브제만 신속하게 뽑아내야 되겠죠. 이런 방식도 당연히 비 할리우드적이에요. 별로 본적이 없다는 것이지 이렇게 되면 있던것이 없어졌다 또는 내가 소유하고 있던것을 탈취당했다 라는 인식이 강해집니다. 그리고 이 장면에서 현서가 없어진후에 비둘기 한마리가 휑하니 날아가는데 이걸 보고 오우삼의 오마주다 이런 얘기를 할수도 있는데 너무 집착 안하는 것이 좋습니다. 오우삼의 비둘기와 이 장면의 비둘기는 완전히 다른 의미로 쓰였고 오우삼의 비둘기처럼 영화 전체에 걸쳐 메이저한 어휘로 사용된 것도 아니죠. 그냥 가볍게 한번 써봤겠지 재밌잖아! 다시 설명해보면 인류는 인류가 스스로 사회 자연 환경을 타락시킴으로서 나타난 병리적인 세력에 의하여 가장 소중한 인간의 순수한 감성까지 빼앗겨 버리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이미 다음 전개를 아시겠지만 과연 인간들은 그것을 되찾으려고 할까요 안할까요...



/이러한 다이빙 장면도 말할수없을정도로 강렬하고 아름답습니다. 디자인의 감각이 최상에 달하여 있는 상태라고 보고 있고 미니말한 의식이 충만하고 잘 형상화되어 있는데 관객의 호흡을 또다시 멎게 합니다.
/이부분은 감독이 다큐멘타리적인 생각을 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멀리서 바라보는 현서의 기절한 얼굴이 연기가 아니라 실제상황처럼 보입니다 생동감이 넘치죠.여기서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는 괴물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여기서 중요했던것은 저 괴물의 모습이 배경이 되는 녹색 언덕이 일종의 보호색 역할을 하면서 괴물의 형체가 잘 눈에 뜨이지 않아야 합니다. 괴물이 지금 뭘 하고 있는지도 육안으로 정확히 식별하기도 어렵도록 멀리 잡아줬어요. 다큐멘터리 필름 돌리고 있는 상황처럼 리얼하게 엄밀하게는 확실치가 않게 그렇게 보여져야 됩니다. 괴수영화는 괴물에 대한 호기심이 지속적으로 유지되지 않으면 그 영화는 망한 영화가 되겠죠. 이러한 부분을 넣어줌으로서 일정한 톤으로 괴물의 이미지를 관리해주는 것입니다. 역시 모든 영화가 그렇듯이 초반부를 잡아주는 것이 가장 어려운 것으로 초반에 이미지나 분위기 조절에 실패하면 관객이 그 이후부터 극장안에서 하품하고 졸고 나가고 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중반부보다 신경을 더욱 쓰게 될수밖에 없습니다
※ 10개의 포스트에 걸쳐, 119분 런닝타임 영화에서 총 118개의 스크린샷을 인용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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