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 2008 _비평

2008. 7. 19. 23:59영화

너무도 매력적인 캐릭터, 그러나 디테일의 부족

영화를 보기 시작하면서 '지도'의 실체에 대해 너무 궁금해 하지 말라. 다양한 이해관계로 얽혀 있는 개인과 집단이 우후죽순으로 등장하여, 지도 하나에 집착하여 쫓고 쫓기는, 얼핏 복잡해 보이는 영화의 스토리 전개에 초반부터 눈에 쌍심지를 켜고 심각하게 연구하지도 말라. 친일판지, 삼국파인지, 일본군인지, 마적인지, 다국적군인지, 그 파벌의 이름이나 관계에 관해 자세히 알 필요가 뭐가 있을까? 어차피 그런 부분이 중요한 영화로 만들어진 게 아니다. 그렇다! 우리는 2008년 단순하면서도 신선한, 감각적이면서도 에너지가 넘치는, 한국형 웨스턴 장르 액션 영화를 만나게 되었다. 이제껏 한국 영화에서, 이토록 만화의 그것처럼, 분명하면서도 과장된, 그러면서도 다분히 영화스럽게 '멋' 있는, '카리스마' 넘치는, '간지' 나는 캐릭터들을 만나 본 적이 도대체 언제였던가? 당연한 이야기가 될수도 있겠지만-여기서 '캐릭터'라는 것은, 극을 이끌어가는, 극을 성립케 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다. 당연히 캐릭터 없이는 극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캐릭터라는 것은, 그 자체로 홀로 존재할 수는 없다. 영화에서 어떤 한 캐릭터가 어떤 또 다른 캐릭터와 직 간접적으로 부딪히고 만나, 쌍방간 관계의 끈을 맺고 상호 교류하게 되는 것은 일종의 운명 또는 본능과 같은 것이다. 마찬가지로 영화 속의 캐릭터는, 그 캐릭터 자신을 품어 안아 가두어주는 무대-장소-배경이라는 이른바 '공간적'인 개념을 일종의 자신의 '엄마'처럼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이 기본적인 원칙이다. 만약 캐릭터가 이것을 거부할 때, 캐릭터는 영상 안에 녹아 들어가지 못하며, 그 부조화스러움이 역시 관객의 눈에 녹아 들어가지 못함으로서, 소위 '튀어'버리며, 영화는 설득력을 잃게 된다. 이제 영화를 다시한번 곱씹어 보자. 이토록 캐릭터, 즉 인물이 대단히 중시되는 영화에서, 연출자의 비주얼 감각이 상당히 뛰어나다는 점은 분명히 상찬해야 한다. 태구(송강호),창이(이병헌),도원(정우성) 이 세 인물에게 부여된, 또는 치장된, 또는 관리된, 패션, 외형, 표정, 행동 등등을 포함한 그 모든 요소들- 그 보여지는, 즉 시각적인 '이미지'라는 것은 그야말로 어떤 정점-'완벽'을 향해 달린다. 태구는 '이상한 놈'답게 정말 이상하고, 우스꽝스러우며, 유머러스하고, 잔머리가 발달해 있다. 창이는 '나쁜놈'답게 냉혈하고 비열한 성격의 소유자로, 사람을 죽여가면서 병적인 쾌감을 느끼는, 정신적으로 피폐하고 자존심이 센 인물이다. 도원은 '좋은놈'답게 인상이나 복장은 깨끗하고 젠틀하지만, 역시 마카로니 웨스턴의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연상시키듯 히어로의 안티로서, 기존 영웅처럼 이타주의적이지 않은, 냉철하고 이해타산적이며, 개인주의적인 인물이다. 극장 속 하나의 프레임 안에서, 이미 많이 보아왔고 잘 알려진, 그래서 너무도 익숙한, 송강호, 이병헌, 정우성이라는 스타급 배우들의 그 이미지, 진부하지 않게끔 영화적으로 재창조되어 깔끔하게 다듬어진, 눈부신 캐릭터 이미지 그 하나 하나를 눈으로, 표피적으로 즐기는 그것 만으로, 관객의 마음, 특히 여성 관객의 마음은 그야말로 행복의 무한한 나르시스에 빠져 들어갈 것이다. 영화를 관람하는 시간은 여성에게 그 시각적인 '멋있음'을, 그 가슴속 '콩닥콩닥'함을, 그 '꽃미남 판타지'를 2시간 내내 여지없이 자극하는 시간으로 기능하며, 남성 관객에게 있어서는 이른바 '폭풍 간지'의 남성성을, 그 마초성의 눈빛과 자세에서 오는 강렬한 카리스마를, 오랜만에 체득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여기에 더불어 송강호의 유머러스함까지, 튀지 않게 잘 섞여 어우러지면서 대중적인 웃음, 즉 가벼운 호응을 간간이 얻어내고 있어서, 영화 전반적으로 긴장과 이완이 비교적 균형적이다.

그러나 아쉽다. 왜냐, 한마디로 말해서 그것은 그 캐릭터가 너무도 선명하기 때문에 그렇다. 설정된 각각의 캐릭터가 너무도 멋있고 매력적이라, 지금의 결과물보다 오히려 더 발전적인 가능성이 있었을 것 같기 때문에 그렇다. 그것은 어쩌면 그래도 비교적 잘 만들어진 영화에 대한 일종의 투정일 수도 있다. 전술하였듯이, 먼저 인물의 비주얼, 그리고 그 비주얼한 이미지를 가져다가, 캐릭터만큼 비주얼한-현란한 원색으로 치장된, 아기자기한 1930년대 만주 배경 공간에 어떻게 붙여서 보여주었느냐? 하는 질문에 있어서, 영화는 흠잡을 부분은 사실 별로 없다. 초 중반부에 등장하는 다양한 장소들-그것이 시장이든 술집이든, 여관이든, 마을이든, 사막 벌판이든 간에, 대부분의 장소에서 벌어지는 액션은 긴장과 힘이 넘치고 폭력적이며 동시에 미학적으로 아름답다. 태구, 창이, 도원, 이 세 인물은 분명히 영상 안에 잘 녹아들어가서 잘 움직이고 있다. 다시한번 평가하지만, 액션 영상은 세계 최고 수준급이며, 환상적이고 현란하다!
그런데 도대체 뭐가 문제인가? 그 무언가 말하기 매우 어려운, 까다로운 무언가 아쉽게 느껴지는 그 무엇은 도대체 무엇인가. 혹자는 이 영화에서, 여성 캐릭터의 비중이 너무 빈약한 것을 지적할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건조하고 텁텁한 사막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에서 여성의 등장을 극단적으로 자제하는 제스처를 보임으로서, 남성성, 즉 마초성만을 더욱 강하게 드러내는 남성 영화로 만들어진 까닭에, 부드럽고 끈적끈적한 여성성이 상당히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또는 영화의 느슨한 런닝타임이나 불필요한 몇몇 장면을 거론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영화는 중반부에 가다가 별다른 설명 없이, 흐름이 뭔가 끊기는 듯 하면서 다소 지루해 지기도 한다. 영화의 전반적인 플롯이 엉성한 문제야, 그 누가 보더라도 의문을 갖게 된다. 도원이 태구를 잡아서 그토록 모질게 끌고 다니다가, 왜 후에는 약간 친해져서 포승줄을 풀어주고 다녔는지에 대한 명확한 이유, 도원이 중반부에 다시 태구를 사막 벌판에서 다시 발견하게 될 만한 개연성이나, 라이벌 관계였을 것만 같은 창이와 도원은 과거에 서로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한 적절한 설명 등등 영화 전반적으로 캐릭터의 밀도와, 이야기 전개의 설득력이 상당히 부족하다. 또한 라스트 씬에서 밝혀지는, 창이와 태구의 관계-둘만의 숨겨진 비밀, 과거라는 것는 정말로 반전의 효과가 떨어졌던, 별다른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장치로서, 역시 두 인물간의 관계를 전혀 만들어주지 못하고 있다. 필자가 보기에, 이 영화의 전반적인 '갸우뚱'스러움에는, 이 세 주인공간의 관계의 끈이 상당히 부실하다는 점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고 본다. 즉 이 영화의 캐릭터는 전부다 이른바 '천상천하 유아독존'형이라, 홀로 독보적으로 존재하면서, 제3의 인물이나 집단과 상대할 때는 언제나 캐릭터 자신의 매력을 효과적으로 발산하고 있으나, 주연급 인물들끼리 서로 상대하게 될 때의, 그 두 인물 또는 그 세 인물의 뭉쳐진, 또는 조합된 이미지라는 상태에서는 아주 미묘한 부조화스러움, 또는 부자연스러움을 유발시킨다. 이 세 인물은 같은 출신의 조선인이면서 서로 너무도 다른 인생을 살아 와서 그런지 몰라도, 워낙 개성이 강하다. 그럼으로, 이들 캐릭터의 이미지는 자신 고유의 매력을 발산하고 있는 동시에, 그 누구와도 타협하거나 섞여지지 않으려는 일종의 장벽barrier을 또한 발산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한번 냉정하게 들여다 보자. 이 세 캐릭터는 일견 그럴 듯해 보이지만, 그다지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아니, 오히려 조화를 거부한다. 부조화. 부조화의 충돌. 그 충돌에서 오는 어떤 알력. 사막 벌판에 홀로 서 있는 오브제적인 것. 결국 세 가지 오브제. 그것 자체를 더욱 대비시켜 하나 하나의 캐릭터의 존재감을 더욱 극대화하는 것으로 본 영화의 성향을 의도적으로 조율하여 장르적 실험을 도모했다. 일반 대중의 입장에서는 단지 그 인물을 연기하고 있는 사람이 내가 잘 알고 있는, 내가 좋아하는, 내가 흠모하는 정우성 오빠이기 때문에, 이병헌 오빠이기 때문에, 아니면 재미있는 송강호 아저씨이기 때문에, 모여져 있는 모습이 그럴 듯해 보일 수 있다. 그것은 하나의 트릭이며, 영화를 시각적인 이미지의 소비로서 바라보는 현 대중의 감각적인 태도에서 오는 하나의 착시이다. 물론 그러한 표피에만 의존하는 이미지는 이러한 전위적 색깔의 장르 영화에서 장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영화속에서 이 세 인물은 셋 다 서로 제대로 관계를 맺고 있지 못하다. 영화 내내 어쩔 때는 같은 장소, 어쩔 때는 다른 장소에 머무르면서 뛰고, 뒤집어 지고, 총질을 해대고는 있으나, 제각기 따로 따로 개인 플레이를 하고 있는 자세다. 각자 가장 잘 할 수 있는 메리트만을 내세워서- 그저 각자 원맨쇼에 열중한다. 그렇게 플러스 플러스되어 그야말로 쓰리맨 쇼가 된다. 이 쓰리맨 쇼는 '동일한 무대'라는 '공책'에 쓰여지는, '서로 각기 다른 언어'로 쓰여진 세 가지 '문장'이다. 이 문장의 언어는 뜻도 다르고 글씨 색깔도 다르며 글자의 크기도 다르다. 이 세 가지 문장은 영상 속에서 수없이 반복되고 중첩되어, 관객의 한쌍의 눈에 한 인물당 3분지1씩 고루고루 뿌려지지만, 대뇌 중추로 빨려 들어가 서로 고루 섞여서 아주 짜릿한 맛의 팥빙수, 즉 위대함greatness을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라스트 씬의 3자 대면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엄밀하게 볼 때, 세 인물은 진정으로, 깊이있게 대결하지 않는다. 다만, 그 이미지로, 그 표피적인 감각에만 의존하여, 대결할 뿐이다. 이 세 인물은 영화 스토리상으로도 외로운 인물이지만, 영화 연출적인 입장으로서도 외로운 상태로서, 인물의 인간적인 깊이감이 상당히 떨어지며, 이렇게 깊이가 없는 상태에서 어떤 '인간 관계'라는 것도 사실 거의 없다. 도원,창이는 물론 말할 것도 없고, 뭔가 나사가 빠져 있는 듯한 태구 역시 인물의 본능적인 성향을 표현하고 있을 뿐이어서, 그 유머러스함과 엉뚱함이 깊은 인간 성향를 드러내고 있는 부분으로 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고려되었을, 너무 과도하게 멋들어진 캐릭터들을 더욱 과장되게 부각시켜 주어야 한다는 강박에, 역시 그 캐릭터들을 최대한 현란하고 이국적인 배경에 감각적으로 보여 때려주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파생된 결과물로서, 그 수려한 외모를 포함하여, 기존에 쌓여있던 배우들의 아우라와, 영상 연출의 스타일리시함으로, 스토리의 어설픔, 엉성함을 교묘하게 메꾸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금 냉정해 져야 하는 부분은, 액션 장르영화 <스피드, 1994>가 그렇듯이, 일반적으로 수작, 걸작으로 평가받는 상업 오락영화 일부 몇몇을 보면 반드시 스토리가 복잡하거나 다채롭지 않다는 점이다. 이 영화는 일견 서사에 대한 아쉬움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엄밀하게 볼 때 이 영화의 단점은 단순한 스토리, 그 사실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탈취하여 쫓고 쫓기는 그 단순한 스토리 구조에 인물 그리고 인물간 관계의 디테일한 깊이감을 미묘하고 치밀하며 농밀하게 살려주지 못한 것에 치명적인 약점이 있는 것이다.  만약 이 영화의 캐릭터가 단지 감각적인 영상안에서 잘 놀고 있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고, 이를테면 조금이라도 타자, 즉 다른 인물에 대하여 배려하거나 영향을 받으려는 여지, 즉 그것이 대사가 되든, 표정이 되든, 어떤 자세나 행동의 변화가 되든간에 그러한 상호 소통의 여지를 남겨 주면서 전개되었다-라고 한다면, 그 인물의 여지 안으로 영화의 단순한 스토리는 함유되고 묻혀져서 더불어 같이 흘러가게 될 것이며, 영화 속 인물에 대한 여운과 영화에 대한 매력은 지금보다 세네배는 증폭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될 때, 영화는 비록 단순한 스토리를 지니고 있지만 더욱 엄청난 폭발력과 아우라를 가졌을지도 모른다. 요는, 시나리오의 대폭적인 수정 또는 플롯의 전면적인 추가, 삭제의 문제가 아니라, 주어진 시나리오의 큰 얼개를 바탕으로, 현장 작업의 실제 상황에서 얼마나 미세하고 교묘하게 연출하여, 장르영화 특유의 어떤 의미를 담아서 씬과 씬을 흘려 보내주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특별하고 별다른 것이 아니라, 결국은 연출자의 디테일에 대한 역량이다. 그것은 정우성의 전작이기도 한- 디테일은 완전히 포기한 듯한 김성수 감독의 영화 <무사, 2001>를 보듯이, 그만큼 로케 촬영의 어려움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 디테일이 부족했기에, 이 영화는 말초적인 남성성은 곧게 세워져 있으나, 역사적, 문화적인 깊이감이 명백히 거세되어 있으며, 감각적인 비주얼을 그저 나르시스적으로 예찬하기만 하다가 끝을 맺어버리는 바람에, 아쉽게도 걸작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그 하나의 계단을 오르지 못한, 비운의 영화로 남고 말았다. 대규모 제작비가 투입되었으면서도, 안정을 희구하지 않으며, 영화 속 캐릭터는 연출자에 의해 재창조되었고, 실험되었다. 그래서 분명히 이 영화는 새로우며, 지금 남겨진 장점보다는 미래로의 발전 가능성, 암시성, 잠재성이 더욱 풍부하다. 그렇기에, 지금 본 영화의 '남겨진 장점'보다는 '남겨진 아쉬움'이 더 크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p.s.그래도 알싸하고 짜릿한, 무지무지 간지나는, 영화의 명장면을 몇가지 열거해 놓아 보자. 무엇보다도 초반부에 제국 열차에서 지도를 탈취하여 도망가는 태구의 앞모습을 잡으면서 열차의 옆모습을 배경으로 깔고 같이 도망가는 카메라의 시선은 예상치 못하여 정말 상큼했다. 이후 황량한 벌판에서, 도망치는 태구를 사냥꾼 도원이 쫓아가며 총을 쏴대는 시퀀스도 재미있다. 창이가 만길과 대결하면서 보여주는 잔인한 검술 액션, 그리고 이후 행해지는 가벼운 회전댄스 역시 카리스마가 넘쳤으며, 뭐니뭐니 해도 너무 멋있게 나오는 도원의 밧줄타기 고공 총격 액션은 환상 그 자체다. 모든 개인과 집단이 한 벌판에 모이는 라스트의 대규모 사막 추격씬 역시 시원하고 스피디하다. 다소 시간을 끌어서 약간 지루한 감도 있고, 순간순간 배경이 다소 허허한 감도 느껴지지만 그래도 뛰어난 스펙타클임은 부인할 수 없겠다. 여기에서 도원은 약간 뒤에 말을 타고 등장하여 일본군을 관통하여 지나가면서 섬멸하는, 정말 너무 멋있는 모습을 또다시 보여준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의 정우성은 너무 멋있다. 너무 폼난다. 창이도 도원도 잡을수 있는 온갖 폼은 잡을대로 다 잡는데, 정우성의 도원이 이병헌의 창이보다 더 멋있다. 라스트씬의 태구,도원,창이 3자 대결 역시 긴장감 넘치며, 확실히 무지하게 멋있다. 분명하게 이름값을 하는 명장면으로 새기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 영화는 한마디로 정말 폼에 있어서 둘째 가라면 아마 그냥 죽음을 택할, 그야말로 폼생폼사 영화다. OST도 괜찮으며, 상업적으로 뛰어난 좋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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