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L 소녀 임은경

2007. 11. 30. 02:00영상_연예



장대비를 느끼는 촉각의 문제

임은경 한국인들은 의외로 그동안 많은 로리타형 연예인이 브라운관에 등장했다는 사실을 잘 까먹습니다. 이쁘장한 소녀가 나타나면 호기심 차원에서 일단 한번 관심을 가져는 보는데, 계속 사랑을 주기는 민망스러운 데가 있죠. 지금도 그러하지만, 연령대에 합당한 신분을 중시하는, 유교적인 연공 서열주의가 강한 한국적인 토양에서는 미성년자 연예인이 음악, CF, 영화, 드라마, 어떤 작품에서든 메인 캐릭터로 등장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대중의 폭발적인 반응과 인기를 끌어낸다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에 가까웠던 시대였다고 봐야겠죠. 이런 시간대에서 또하나의 주목할만한 로리타가 등장을 했으니, 바로 TTL소녀 임은경입니다. 임은경의 첫 TTL CF가 1999년에 나왔는데, 당시로서는 실로 전무후무했던 감각적이고 은유적인 영상기법, 대중에게 메세지를 정확하게 전달하지 않으면서 호기심을 유도하고, 브랜드네임을 무의식중에 각인시키는 이른바 teasing기법을 도입하게 됩니다. 요즘 들어와서는 이 기법을 하도 CF에 많이 써먹어서, 광고를 뚫어지게 보고 있어도 이 광고가 어떤 상품을 선전하는지 잘 모르게 되어있습니다. 아예 노골적으로 아무 의미도 없는 이미지만 몇개 띄엄띄엄 보여주다가 단지 브랜드명만 마지막에 둥실둥실 걸어놓는 황당한 CF도 상당히 많죠. 그럼에도 요즘에는 이런 CF에 대중이 다들 익숙해져서, 언젠가 TV에서 본 그 CF의 감각적인 영상 이미지와 연계해서 막연하게 상품을 선택하는 시대입니다. 7년전 임은경의 TTL광고도 그런 면에서는 만만치가 않습니다. 그만큼 시대를 너무 앞서갔던 영상이라고 의미를 지어볼수 있겠어요.   
    


타인을 응시하는 시각의 문제

임은경의 TTL광고는 1999년 전후로 새로운 세대인 n세대의 등장과 그후 이 세대의 폭발적이고 대중적인 융성을 예견했다는 점에서 높은 가치를 지닌 광고라 할수 있습니다. n세대라고 한다면 1977년에서 1997년 사이에 출생한 세대를 지칭하는 단어로, 디지탈 기기에 익숙하고 인터넷 네트워크 상에서의 쌍방향적인 의사소통을 즐기며, 수용자이기 보다는 이용자이기를 원하고, 자기주장과 자기표현이 강하다는 점 등을 들 수 있습니다. n세대가 등장하기 이전 세대가 바로 중성적 매력으로 신드롬까지 일으켰던 여배우 신은경으로 대표될수 있는 X세대인데, 이 세대는 1961년에서 1984년사이에 태어난 세대를 일컫는 말로서, 역시 독립심과 가치관이 뚜렷하며, 공동체에 대한 일정한 반항심을 견지하면서 개인주의를 추구하는 성향을 보입니다. 결국은 X세대에서 n세대로 넘어올때, 디지탈적인 요소와 가상 네트워크적인 요소가 첨가되어서 n세대가 만들어졌다라고 봅니다. 현재 2007년인데, 사실 지금도 n세대입니다. 이외에 무슨 Y세대, Z세대...뭔세대...별의별 세대가 다 있는데, 제가 보기엔 쓸데없는 영문자 놀이라고 생각이 되요. 가장 유명한 것 몇개만 알면 되는거지 이 세대 저 세대 다 외우고 다닐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n세대가 현재까지 사회의 젊은 층을 형성하고 있고, n세대로서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시간대이며, 또한 앞으로 더욱 융성할 가능성도 높습니다. 그러니까 n세대 이후 새로운 세대가 나타나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감각적인 영상 이미지의 지배와, 유비쿼터스적인 환경이 더욱 심화되고 있는 현 시대상황을 볼때, 더욱 실제적인 대화가 줄어들고 전달하고자 하는 말은 입출력장치를 통해 저장한후 리플레이한다거나, 세상의 모든 가치에 대하여 언어,즉 랭귀지의 설명을 통한 확실한 이해를 거부하고 보여지는 표피적인 감각만을 일방적으로 쫓아가는데에 집착하여, 허무하고 무의미한 자아의 상태를 추구하는, 또 첨단기술에 의하여 자신의 몸과 정신을 부착하여 통제받고, 기계가 알아서 나를 움직여주기를 바라는 사이버 펑크적인 세대가 앞으로는 일부 소수계층에서 본격적으로 대중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 얘기는 그저 지금 떠오르는 생각을 쓴 즉흥적인 예상일 뿐이니까요.



과거의 소리를 들으려는 청각의 문제

그런데 이 광고가 모순되는 것이..기존의 30-40대 연령층을 대상으로 한 마케팅에서 향후 잠재적인 소비자층인 20대를 공략해보겠다는 최초의 시도였거든요. 96년도 즈음부터 핸드폰이 대중화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는데 당연히 지금처럼 핸드폰 가격이 만만치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젊은층이 누구나 쉽게 구매할수 있었던 그런 상품은 아니었어요. 99년 정도 들어서자 기계값도 급속히 인하되어가는 흐름이었기 때문에, 20대가 새로운 타겟으로 부상할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20대의 011이 아니고, 스무살의 011이에요. 그런데다가, 임은경이 고등학교 1학년일때 이 CF를 찍었고, 실제로 보여지는 외모는 중학교 1학년 정도로 볼 수도 있는 막강 동안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스무살 이라는 카피는 실로 미묘하기도 하고 심오해요. 절대로 임은경의 이미지는 20대를 대표할수 없거든요. 그건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런데 스무살 이라고 카피를 던져버리니까, 나이가 20대에 들어가는 전 연령이 이 스무살이라는 단어의 어떤 무의식적인 강박에 사로잡혀서 일렬종대로 헤쳐모여를 할수가 있게 되는 겁니다. 즉 자신의 나이가 20대의 몇살이든 간에, 일단 무조건 스무살이라는 기준으로 회귀해서 정신적인 연결고리를 걸어놓을수 있다는 것이죠. 그것과 동시에 스무살이라는 이 기준점은 20대 뿐만 아니라 10대까지 흡수할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획득하게 되는데, 이렇게 스무살이라고 카피를 걸어놓으면 10대 또한 불확실한 스무살의 미래를 지향하게 됩니다. 이전까지는 TV안에서 10대의 마음과 감성을 이해하고 배려하려는 광고가 거의 없었거든요. TTL광고는 사실 10대에게 훨씬 더 어필할수 있었던 광고입니다. 다만 실제 011 가입이 20세 이상인가 그랬기 때문에 실질적인 구매층은 되지 못했어도, 임은경의 여학생 이미지가 강렬한 이 광고는 사실상 10대를 위한 광고였다고 보는게 타당합니다. 이런 식으로 서태지 또는 신은경을 핵심 모델로서 추앙했던 X세대 이후에 n세대가 이렇다할 구심점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었다면, 새로운 구심점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스무살의 011 TTL뿐만 아니라, 이후 2001년에 KTF에서 1318 개념이 등장하게 되는데, 역시 10대의 연령층을 어떤 단어로서 묶어주는 행위가 되는 거예요. 70,80년대의 10대라고 하는 계층은 사회적으로 철저히 무시당하고, 인격적으로 존중받지 못했던 세대였습니다. 전근대적인 학교 교육환경이 그러하고, 사회와 기성세대의 태도와 윤리적인 규제가 역시 그러했다는 것이죠. 90년을 넘어 2000년대로 들어오자 이제 서서히 10대에게 눈을 돌리는 상황이 되었고, 10대의 기본적인 인권에 대한 범국민적인 반성과 배려가 차츰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10대의 부족한 놀이문화의 문제도 심심치 않게 제기되고, 고독하고 개인주의적인 사회환경속에서의 유일한 은닉처이자 해방구로서, 삐삐에 이어 10대의 핸드폰 문화가 사실상 유일한 대안으로 부상할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10대에게 있어서 이 [핸드폰]이라는 것은 최후의 생명줄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지하철을 타시든, 버스를 타시든, 분식집에 가시든, 교복을 입은 10대들에게 있어서 핸드폰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는 조금만 관찰을 해보시면 금방 알수 있는 것이죠. 바로 그런 10대의 감성과 사회적 맥락에서, 우리는 임은경의 TTL광고를 바라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역시 감각적인 이미지를 더욱더 선호해가고 있던 20대 연령층도 더불어 아우르고 있음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내부 자아와 외부 공간과의 소통의 문제



어항

일반적으로 임은경 TTL 광고를 본후의 반응이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다' 또는 '뭔가 신비롭고 감각적이다' 정도가 될수 있겠는데, 당시로서는 TV에서 흔히 볼수 없었던 그야말로 독보적이고 혁명적인 영상이었음은 분명해요. 여타 광고들과 완전히 따로 놀고 있으니까, 이 CF가 뜨는 순간 그냥 정신이 멍- 해지거든요. 각개 대중의 다의적인 해석을 유도하는 '열린' 영상으로 평가할수 있겠지만, 사실 임은경의 광고는 굉장히 난해한 영상은 아닙니다. 유명하다는 예술영화 감독들, 한국의 김기덕 감독의 작품만 보더라도, 간혹 알 수없는 장면들 때문에 머리를 쥐어짜야 할 때가 있습니다. 특히 왕가위 감독은 영화의 내용을 전부 다 설명해주지 않을 때가 많아서, 관람자 입장에서 일부는 아예 해석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도 있어요. TTL광고는 그 정도의 수준은 아닙니다. 다 일정한 의도를 가지고 구도와 사물이 배치되어 있고,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와 스토리도 분명히 있습니다. 임은경이 앉아있는 폐쇄적인 느낌의 이 방안은, 10대들 특히 10대 소녀의 내면 세계를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방안의 인테리어가 첫인상부터 벌써 느낌이 좀 찝찝해요. 그로테스크하죠. 그러면서 벽면 한 부분이 갈기갈기 찢겨져 있고, 어항도 깨져있고, 어항의 물이 쏟아져 버린듯이 바닥에 물도 흥건히 고여 있으며, 잎파리 하나없는 나무가 벽을 뚫고 들어와 있는 상태에요. 10대의 심성이란 이렇게 신선한 생명을 잃은 파괴된 공간입니다.  





카메라와 임은경이 자주 서로 마주보게 되는 것은 바로 임은경의 시선 변경이 이 광고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임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임은경이 귀를 막자 시청자도 역시 귀를 막은듯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데, 이것은 이 소녀가 지금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지만 않았을 뿐이지, 사실은 이 물방울 소리가 나는 공간 안에 들어와 있는 것을 아주 고통스럽게 느끼고 있음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임은경이 고개를 돌려 어항을 응시하는 행동은 바로 이렇게 괴롭고 답답한 환경속에서 일종의 비상구 또는 지향점을 찾기 위한, 최후 방편적인 행위가 됩니다.







물고기 한마리가 어항 밖으로 튀어나와서 공중을 날아다니는데...이 물고기를 임은경이 잡으려고 시도합니다. 물론 잉어회를 해먹기 위해서 잡으려고 하는 것은 아닐거예요. [물 만난 고기]라는 말이 있죠.이 광고는 물고기의 물 안에서의 특성, 즉 전후좌우 자유롭게 움직일수 있는 장점을 강조하는 것으로, 10대가 미래에 지향하여 나갈 어떤 관념이 바로 이러한 물고기의 관념이어야 함을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물고기가 10대의 선구적인 모델이 되는 것이죠. 물고기가 구속력이 강한 어항이 깨지자 그곳을 탈출하여 상대적으로 부피가 넓은 방 안을 물 안과 똑같이 유영하는 행동은 10대들에게도 물고기와 같이, 자유로워질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아주 짧은 순간, 소녀가 물속에서 올라오는 장면이 삽입되어 있습니다. 이제 무의식 세계에서 이러한 환영이 떠오르는 거죠. 내가 이제 수영을 하듯이 자유로워질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물론 당연히 시청자의 무의식에 이 광고 영상이 순간적으로 남겨지게 되기 때문에, 볼 때는 이해가 안되도 잔상의 기억이 오래 남는다는 거예요.







어항안에 핸드폰이 결국 어항을 깨뜨리고 물고기를 튀어나오게 했다고 볼수 있겠죠. 이 핸드폰과 10대와의 만남이라는 것은 아직도 서로 친밀하지 못합니다. 낯설기 때문에, 처음 만나기 때문에, 두렵기도 하기 때문에, 어항의 깨진 유리 사이로, 울지도 웃지도 않는 무표정의 얼굴을 한채 신기한듯이 관찰하면서 서서히 새로움에 접근하게 되는 것이죠. 그렇게 해서 이 광고가 제시하는 자유로의 가능성은 바로 핸드폰이 되는 겁니다. 억압되었던 나의 내면의 자유를 비로소 획득하고, 단절된 외부세계와의 소통을 회복하는 최후 수단으로서 이 핸드폰은, 이 광고의 카피가 말하듯이 처음 만나는 자유가 되는 것입니다. 1999년 이 광고의 감성이 지금 현재 10대들에게 물어봐도 여전히 통하는 감성임을 여러분도 느끼실 수 있겠죠.







우주인

이 광고는 첫번째 광고보다 쉬우면서도 아이디어가 참 독창적이에요. 우선 이 난파된 우주선에서 겨우 탈출해 나온듯한 우주인의 모습을 보세요. 캐노피도 깨져있고 등에는 큼지막한 태엽장치가 꽂혀져 있습니다. 뭐겠습니까. 획일적이고 구속적인 학교 공교육,그 비인간적인 환경에서 똑같은 모습으로 생산되어져 나온 장난감 로봇 10대들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누적된 고통에 의해 더이상 제대로 힘을 낼수 없을 정도로 지쳐서 세찬 파도속에서 나뭇가지를 부여잡고 마지막 생존의 몸부림을 치고 있는 중이에요.







이때 한 구원소녀가 등장합니다. 무엇으로 구원할수 있습니까 바로 저기 보이는 소녀의 흰색 의상과 같은 어떤 순수함만이 현재의 나의 고독과 불안, 파괴된 심성을 치유하고 구출할수 있다는 것이죠. 그런데 묘하게도 이 구원소녀는 자기 자신이에요. 그러니까 자기가 자기를 구원하는 거죠. 일종의 도플갱어입니다. 또한 self에요. 이건 무엇이냐 내가 나를 바라보는 중이에요. 10대들은 자신의 자아를 성찰하고 발견해야만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자기 스스로가 적극적으로 지금의 사회환경으로부터 탈출을 해야겠죠. 저 구원소녀가 이전 광고와 마찬가지로 깨어진 캐노피를 관찰하고 무엇을 꺼내려 합니다. 그 탈출의 방법도 다른데서 찾을수가 없다는 거예요. 바로 자기 자신이 캐노피를 깨어내야 되고, 캐노피안, 즉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역시 TTL핸드폰을 꺼내는 제스처로서 10대의 절명적인 위기상황에서 탈출할수 있는 매개체로서 핸드폰이 필요하다...뭐 그런 얘기가 되는 것입니다. 이 광고는 이렇게 타인 의존적인 결말을 피하고 자립,독립적인 감성이 상당히 강해서 역시 10대에게 크게 어필할수 있는 영상이라고 볼수 있겠습니다.











화석

이 광고는 좀 간단한 영상입니다. 이제는 TTL광고 기획하는것도 귀찮은지, 적당히 멋있는 장면으로 때울려고 했던 것인지도 모르죠. 완전히 쥬라기 공원의 lost world 입니다. 이 배경은 공룡이 존재했던 원시시대라고 보면 무난할 것이구요. 왜 원시시대로 임은경이 가서 멍한 표정을 지어야 하느냐...자기 안의 잃어버린 세계 또는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으려는 몸짓입니다. 이런 감성이 대부분 10대들에게 잠재해 있는데, 10대를 위해 만들어진 보아의 영상음악 [아틀란티스 소녀]도 이 광고와 같은 맥락입니다. 그러니까 태고적 어떤 과거가 나에게 있지 않느냐 하는, 나의 진실과 나의 존재를 알고 싶다는 몽환적이고도 원초적인 질문입니다. 그것에 접근할수 있는 매체는 또 무엇이 되는 겁니까. 지금 임은경이가 앵무조개를 들고 있죠. 이 앵무조개도 원시시대때의 생물이라고 알고 있는데....마치 무슨 소라껍질 처럼 앵무조개에서도 소리가 나는지는 전혀 알수 없습니다. 10대가 청각,시각,촉각,후각 등의 감각기관에 굉장히 예민한 존재인데, 이 광고의 제스처에서는 청각만을 특별하게 부각시켜 줍니다. 청각을 이용한 어떤 사운드를 들으려는 시도는 '나'라는 자아의 진실로 향해가는 행위가 되는 것이며, 결국 현재의 귀에다 대고 목소리를 듣는 핸드폰이 되는 것입니다.
   








물뿌리기

이 광고에 와서는 좀 어려워지기는 합니다. 한번 볼까요. 화초에 물을 뿌리는 행위는 '지속적인 성장'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10대의 성장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거예요. 성년이 되기까지는 일단 정신적,육체적으로 자라나야 되는 존재이기 때문에, 외부 환경으로부터 어떤 요소를 공급받느냐에 따라서 청소년기의 성장 과정이 사뭇 달라지죠. 그래서 청소년때, 10대의 교육환경, 가정환경이 중요하다..라고 다들 말하기도 합니다. 이제 이런 이야기가 나올수가 있어요. 온실속의 화초냐, 마당의 잡초냐 하는 문제입니다. 여기서 임은경이 키우는 온실의 화초는 공동체 사회에 속하여 적응되어 있는, 무난하게 서로 관계를 맺으며 자라나고 있는 일반적인 10대를 의미한다고 볼수 있습니다. 







이 광고영상은 제가 개인적으로 상당히 애착을 갖고 있는 작품입니다. 지금 소녀 혼자 이런 장소에서 살고 있다는 설정인데...아주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인 온실 내부 공간과 지금 창문을 열고 바라보는 내외부 시선의 두 캇트 모두 시원한 바람이 정말로 시청자에게도 불어오는 듯한 천재적인 장면 연출입니다. 이런 장면을 우리 한국 SF영화에서 좀 봤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어요. 이런 장면은 진짜 영화에서나 볼수 있는 정말 매력넘치는 부분입니다. 사면의 격자 창 벽면을 보면 리들리 스콧의 영화 [블레이드 런너]의 향기도 막 느껴지는 것 같애요. 너무 좋지 않습니까. 바로 밑의 임은경 클로즈업 장면과 물뿌리는 자세를 프레임안에 잡아넣은 구도도 기가 막힙니다. 정말 아름다운 장면이에요.











아무리 물을 뿌려도 절대 자라나지 않을 것같은 돌덩어리에게도 물을 줍니다. 이 돌덩어리는 온실 외부에 속한 이를테면 왕따적인,소외된 또는 낙오된 존재로서의 10대를 의미한다고 볼수 있어요. 그러니까 온실에 속한 10대와, 온실에 속하지 못한 10대, 두 존재 모두 마찬가지로 [물]이라는 영양이 공급되어지는 것은 동일합니다. 그렇지만 10대가 외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 계층이기 때문에, 광고는 마지막에 이렇게 질문을 던집니다. 너 행복하니? 이 질문에는 바로 현재 10대의 고민과 방황이 담겨 있습니다. 사실 이 광고는 좀 어렵기 때문에, 저 마지막의 웬 소녀가 비를 맞고 서 있는 저 장면이 빠진다면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영상이 될 뻔 했습니다. 아마 편집 과정에서 단서를 약간이라도 찔러넣어주는 방향으로 결정이 되었겠죠. 지금 차렷자세로 서있는 소녀는 임은경이 아닌 것으로 해석해야 될거예요. 머리모양도 틀리고 옷차림도 틀리고 얼굴을 알아보기에는 너무 멀리 찍혀있습니다. 웃옷을 벗은 여학생 교복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거예요. 장소는 무슨 1960년대 도시 외곽 근방 풍경을 보는 듯하죠. 그러므로 이 소녀는 현재 10대의 모습, 그러니까 1990년대 후반을 살면서 [물]이라는 영양분을 공급받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행복, 즉 삶의 질을 걱정해야 하는 애처롭고 불안한 존재로서 서 있는 것입니다. 

강렬한 색깔을 즐기는 시각의 문제















'영상_연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녀시대_Gee 단평  (0) 2010.10.21
원더걸스_Nobody 단평  (0) 2010.10.20
원더걸스_So Hot 단평  (0) 2010.10.20
원더걸스_Tell Me 비평  (0) 2010.10.20
소주한잔을 권하는 새내기, 남상미  (0) 2007.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