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드 레이서, 2008 _비평

2008. 5. 12. 21:59영화



두뇌의 사색을 원천적으로 규제하는 말초적 감각의 향연

카레이싱이란 경기의 근본적인 속성상, 눈앞에 결승점이 나타날 때까지 항상 앞만 바라보면서 끝없이 달려나가야만 하는 태생적인 운명을 지닌다. 그리고 그것은 통상적으로 창작물에서, 단순성과 직선성, 그리고 속도에 대한 가장 강렬한 집착과 숭배로서 미학적으로 표현되고 묘사된다. 워쇼스키 형제의 <스피드 레이서>는 이러한 카레이싱의 매혹적인 장점을 '특수효과'라는 첨단의 영상기술을 활용하여 극대화하는 것으로, 원작 일본 만화를 상당히 효과적으로 실사 영상화시켜 놓은 듯 보인다. 촉망받는 레이서로서 명성을 얻다가 불의의 사고로 죽은 형 렉스에 대한 존경심으로, 유명 레이서를 꿈꾸며 자라왔던 스피드의 어린 시절에 대한 설정이 영화의 기본적인 모티브로서 제시되며, 여기에 유대감 높은 가족 성원, 부모를 비롯한 여자친구 트릭시, 꼬마 동생 스프리틀, 정비공 스파키, 그리고 침팬지까지, 스피드 주위를 둘러싼 이들은 영화 내내 스피드의 조용하며 끈끈한 조력자이자 조언자로서 기능한다. 여기에 자본의 권력으로 스포츠의 순수성을 훼손하는, 즉 스포츠를 한낱 상품으로 치부하여, 승부조작에 의한 주가조작을 통한 이윤획득의 목적으로 스포츠를 활용하는 대기업의 어두운 논리가 끼워져 있는 점은 일견 흥미롭다. 대기업의 독점과 지배의 논리에 의해, 유능하고 꿈많고 순수한 노동자는 매혹적인 돈의 유혹에 홀린듯이 팔려나가 결국은 대기업의 '자동차 부품'적인 가치로 전락해 버리며, 중소기업들은 자본권력과 정치권력의 두터운 지배구조 속에 갇혀 위협받고 신음하며 사멸해 간다.    

그런데 패밀리즘, 그리고 캐피탈리즘, 영화에 흐르는 이 두 가지 큰 개념의 축은, 과연 이 초극 스피디한 레이싱 경주 영상속에 제대로 녹아들어가 있는 것일까. 결론적으로 전혀 그렇지 않다. 형제애 또는 가족주의, 그리고 자본주의가 영화 내내 끊임없이 거론되고는 있으나, 사실상 비평하기가 민망할 정도로 피상적이고 유치하다. 가족, 패밀리-물론 그들은 항상 스피드를 아끼고 도와주며 조언한다. 스피드가 실제 경기를 할 때마다 항상 관중석에 나타나 앉았다가, 일어났다가, 온갖 표정으로 괴로워하다가, 환호하다가를 반복한다. 그러나 사실 이 영화는, 굳이 그렇게 가족들이 쌩난리를 치지 않아도 별다른 상관은 없다. 마찬가지로 자동차 대기업 로열튼 회장이, 스피드가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해서 괜시리 증오심을 가질 필요도 없고, 몇몇 경쟁자 레이서들을 돈으로 매수해서 스피드를 죽이려고 오기를 부릴 필요도 별로 없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이러한 서사의 전개, 발전이 중요한 영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서두에 언급하였듯이, 레이싱 영상물의 근본 속성인 '직선성'과 '단순성' 그리고 '속도감'은, 현대 사회문화의 담론을 쑤셔담아 연출하기에 상당히 어려운 점이 많다. 이 영화가 기본적으로 설정한 배경과 연출의 구성은 일종의 어떤 담론적인 사색을 담으면서 영상화되어 있지 않은, 즉 인간의 두뇌가 숨쉴만한 여유치를 요만큼도 허락할 수가 없을 정도로, 지극히 성급하고 극단적이다. 다르게 말해 본다면, 당연히 이 영화는 스피드의 엄마로 분한 수잔 서랜든이 과거에 출연했던 영화<델마와 루이스, 1991>같은 로드무비의 느린 성격과 완전히 정반대에 놓여 있다. 레이싱 영상의 초극단적인 속도감과 현란하고 말초적으로 쏟아지는 색깔 이미지의 과잉은, 관객에게 스토리 전개의 명료한 인식 또는 철학적인 사색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분명한 잘못을 저지른다. 관객의 눈은, 경기 영상의 직선성과 단순성에 본능적으로 익숙해지고, 레이싱 경기의 원형 트랙과 자동차들을 온전하게 쫓아가기도 바쁘고 버겁다. 레이싱 영상의 연출과 편집이, 기존의 '롤러코스터형 할리웃 블록버스터'를 완전히 탈피하여, 영상의 파격과 영상의 혁명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강박증으로, 카메라의 시선을 사방팔방 여기저기 짓이겨 놓고, 급격하게 당기고 쑤시고 곱하고 나누어, 도저히 경기 그 자체의 전반적인 진행 상황이나 현재 순위를 제대로 알아볼 수도 없도록 만들어 버렸다. 영상의 과도한 흘러넘침이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사고와 의식까지 규제하여 버린 보기 드물고 극단적인 사례이다. 이런 영화에서 관객이 어떠한 비평적 담론을 제대로 나눌 수 있다는 말인가.

생각해 보라. 이 영화는 '레이서'라는 이름만 뺀 동명영화 키아누 리브스의 <스피드, 1994>에서의 이성적, 합리적이며 깨끗하고 스무스한 차량 시퀀스를 기대하기가 어렵다. 영화속 죽음의 경주-사막 랠리씬이 영화<스타워즈 에피소드1, 1999>의 어린 아나킨의 사막 레이싱 경기에 비견되기도 하는데, 미끈한 영화 <스타워즈>처럼 순위 경쟁의 시퀀스를 역시 눈으로 편안하게, 제대로 즐길 수가 없다. 그렇다면 이렇게 괴이한 액션 연출이 어떤 신선한 무언가를 담고 있는 것일까. 일견 새롭게 보이기도 하는데, 하도 정신없이 잘라놓고 튀게 해놔서 눈알이 아플 지경이다. 더욱 노골적으로 평가하면 2시간 동안, 영화의 모든 자동차 경주씬이 장소와 색감만 확연하게 달라질 뿐이지 근본적으로는 완전히 똑같아서, 지독하게 자극적이고 말초적인 현란한 영상만이 눈알 1mm표피에 둥둥 떠다니고 대뇌는 마치 집단 광우병에 걸린듯이 멍-해지는 것이다. 게다가 레이싱 경기중에 캐스터들의 해설하는 모습들을 다양하게 찔러넣어 주는 것이나, 로열튼 기업 회장이 레이서를 돈으로 매수하는 씬이 짬짬이 겹쳐져서 특별히 부각되어 보여져야 하는 이유 역시 석연치 않다. 이러한 연출 역시 물론 만화적이지만, 만화 이상의 무엇이 없으며, 별다른 깊이도 없는, 피상적으로 치장된 화면에다 다시 덧칠해 놓은 것으로 밖에는 볼 수가 없다. 결국 간혹 보이는 주인공의 방황하거나 고민하는 모습은 관객에게 공감을 제대로 얻지 못하며, '세상을 바꾸어보려는 우리의 의지가 중요하다'느니, '왜 내가 레이싱을 계속해야 하냐'느니 따위의 철학적인 질문은 공허한 메아리로만 들리게 된다. 영화에 철학적인 대사가 삽입되어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은 바로 이렇게 레이싱 경기가 주가 되는 영화에서, 그 레이싱 경기 영상의 그 이미지만으로, 혹은 그 미장센만으로, 또는 그 시퀀스만으로, 연출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철학적인 또는 의미심장한 메세지가 다분히 원초적인 레이싱 경기만큼, 그야말로 아주 '단순하게' 아주 '직선적으로' 뿜어져 나와야만 했다는 것이다.

9년전 <매트릭스, 1999>의 위대한 연출자가 이 영화에서 바로 이러한 아이러니, 이를테면 '직설적인 깊이감'을 영화에 담아내지 못했음은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대중적으로 완전히 외면해버려도 상관 없을, 아주 형편없고 무의미한 영화이지는 않다. 영화는 마치 다채로운 색깔의 휘발유를 화면에다 정신없이 뿌려놓고, 이를 0.5초내에 바로바로 휘발시켜 버리면서 또다시 새로운 휘발유를 부어대는, 그야말로 동적인 시각 이미지가 도달할 수 있는 최종 극단을 표현주의적으로 실험하고 있는 듯 한데, 짜증이 날 정도로 튀는 강렬한 원색의 색상과, 조절 능력을 거의 포기한 듯한 전반적인 화면 톤의 구성을 보면 그야말로 중구난방에 춘추 전국시대로서, 감정 과잉, 감각 과잉, 물량 과잉, 스케일 과잉, 그야말로 온갖 오바와 과장으로 점철되어 있다. 물론 이것은 장단의 논란을 불러일으킬수 있는 것이지만, 여기에 필설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실로 눈이 부시는 놀라운 영상 이미지와 시퀀스가 같이 섞여져 있음을 고백하게 될 수 밖에 없어, 그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이 영화의 시각 영상적인 가치 또는 상업적 쾌락의 가치를 매길 수 있을 것이다. 동화적인 상상력으로 가득한, 로맨틱한 꽃밭과 마을 풍경, 뜬금없이 등장하는 보랏빛 비행선, 장쾌한 빌딩숲 스카이라인, 로열튼 기업 공장 내부의 아기자기한 캐릭터들과 생산라인, 어지럽고 매혹적인 3차원 트랙과 경주 차량들의 마찰과 파열 등등이 그나마 극장을 떠나는 당신의 뇌리에 쾌락적으로 남아 돌수는 있을 것이다. 그래도 역시 이미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1,2,3부작, 1999-2005>과 팀버튼의 <가위손, 1991><찰리초콜릿공장, 2005>, 그리고 톰크루즈의 <폭풍의 질주, 1990>, 실베스타 스탤론의 <드리븐, 2001>와 같은 통상적인 리얼 레이싱 무비, 그리고 이미 완연하게 보편화된 <니드 포 스피드>와 같은 3D 레이싱 컴퓨터 게임 영상이 그동안 대중의 눈을 지나왔음을 상기해 볼때, 이 영화는 기존 판타지 영화, 그리고 레이싱 영화의 한계를 넘어서지는 못했다. 결론적으로 너무 기대하지 말라. 그리고 너무 뚫어지게 경기 장면을 보지도 말라. 그저 아무 생각없이, 2시간동안 다채롭게 떠오르는 연속적인 시각 이미지들을 그저 눈알에 오이맛사지 하는 어린아이가 되어 보라.

p.s.필자가 한국인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 영화에서 저돌적인 이미지의 태조 토고칸으로 분한 비(정지훈)는 상당히 비중이 큰 조연이며, 유약한 이미지의 에밀 허쉬보다 훨씬 더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비의 성공적인 할리우드 데뷔를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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